훈련소를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는 날, 대기하고 있는데 군복을 입은 다운증후군 병사가 빼꼼히 우리를 쳐다보더라. '요즘은 장애인도 군대에 보내나?'라고 생각했는데, 배치 받고 보니 그 장애인 선임과 같은 대대, 같은 소대에 배치받았음 (다행히 같은 분대는 아님).
일과 시간에 같이 일하면서 의사소통을 해보니까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하고, 정상인처럼 생각할 줄 아는 것 같더라. 그냥 정상인 같아서 지냈음.
나랑 두 달 차이 나는 선임이었는데, 일과 끝나고 복귀하면서 같이 걸어다닐 일이 좀 있었음. 근데 이 사람이 맨날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서 쫑알대고 선임들 욕하고 다녔음. 선임이랑 있을 때는 조용한데, 후임이랑 있으면 뒷담화를 엄청나게 깜.
어느 날 이 선임이 후임들을 데리고 선동질을 하면서, 마음에 안 드는 고참을 마편(마음 편지)으로 보내버리자고 작당모의를 했음. 나는 그 고참에 대해 불만이 없어서 동조하지 않았는데, 나머지 동기들이 선동당해서 찌르자고 난리 난 적이 있었음.
몇 주 지나니까 소대장이 나 포함 후임들을 불러 모아서, 마편에 적힌 내용을 다 읽어주며 이게 사실이냐고 물어보더라. 들어보니까 맞는 말이긴 한데 너무 부풀려진 내용이었음. 예를 들면, 그냥 톡 친 것을 구타로 표현하거나, 장난으로 "나 안마 좀 해주라"라고 한 것을 안마 강요로 표현하는 등 내용이 많았는데 80%는 부풀려서 적혀 있었음. 없는 내용을 지어낸 건 아닌데, 부정 못하게 교묘하게 적었더라.
결국 그 고참은 싸지방 30일 금지와 휴가 짤리는 징계를 받게 됨. 그런데 정의로운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음. 고참의 분대장에게 찾아가서 "저 다운증후군 선임이 후임들을 모아서 작당모의하고 거짓 내용으로 선동질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구타나 그런 건 없었습니다"라고 말하고 나옴.
분대장이 사실 확인을 해보겠다고 해서 일단 들어감. 그날 저녁에 그 다운증후군 선임은 분대장한테 엄청 혼나고, 다음 날 징계위원회가 다시 열려서 휴가가 엄청 짤리고, 고참의 징계는 조금 감면됨.
다음 날 그 고참이 나한테 찾아와서 고맙다고 커피를 주더라. 그때 알게 된 사실인데, 그 다운증후군 선임은 쌍둥이 형제였고, 형이 진짜 다운증후군인데 걔는 장애가 없고, 쌍둥이라 외모만 닮았다고 하더라. 이 얘기를 듣고 정말 안타까웠음.
그 고참이랑 나랑 근무지가 같아서 일과 시간 동안 그 고참 덕에 꿀 빨며 지낼 수 있었음. 포상휴가 추천도 나한테 밀어줘서 포상도 잘 받고 정말 꿀 군생활 할 수 있었음.
그 다운증후군 선임은 이 사건 뒤로 평소에도 조금 폐급이었는데 완전 폐급으로 낙인 찍혀서 후임들에게 무시받으면서 군생활하다가 전역함. 나중에 나도 전역하고 동기에게 들었는데, 그 선임은 전역 후 다단계를 한다고 하더라.
진짜 불편한 골짜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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