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만 다루는 것은 어떨까>
고등학교 ‘통합사회’ 교과는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처음 도입되었다.
문과와 이과의 통합 교육, 동일 교과 범주 내에서의 통합 교육이 강조되면서 통합과학과 더불어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반드시 이수하도록 하였다.
그전의 2009, 2011 개정 교육과정에도 ‘사회’ 교과가 있기는 했지만, 수능이나 입시와 크게 연계되는 과목이 아니었기 때문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사회 교과를 아예 개설하지 않는 학교도 많았다.
고등학교 2~3학년이 선택 중심 과정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고등학교 1학년은 문과-이과 공통 교육을 하는 마지막 학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시기는 성인기의 목전이기 때문에, 교육(특히 사회과)은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또한 사회인으로서 자신과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지의 고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좋다.
통합사회 교과에서는 가장 먼저 통합적 관점의 중요성에 관해 학습한 뒤에, ‘삶의 목적으로서의 행복’에 대해 학습하도록 한다.
그런데 예전부터 이 부분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삶의 목적을 무엇이라고 정할 수 있는 것일까?
현실적으로 보면, 인간의 삶은 계속되는 난관과 고민으로 점철되어 있다.
동시에, 사람이 삶의 목적의 유무와 내용에 대해 갖는 생각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는 자아정체성의 일부를 이룬다.
학생들에게 삶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보고 이를 나눌 기회를 가지게 하는 것은 좋지만,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정하고 들어가는 것이 좋은 것인지 싶다.
물론 삶의 목적으로서의 행복을 주제로 다루는 데에는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교과서를 보면, 삶의 목적을 ‘수단적 목적’과 ‘궁극적 목적’으로 나누고, 행복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추구하는 구체적 목표(e.g. 경제적 안정)와 달리 후자에 속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행복이 무엇인지 고정적으로 주입하려고 하지 않고, 시공간에 따라 다른 행복의 정의와 기준을 제시한다.
그리고 통합사회 교과는 전후의 과정과 연계하여 지도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후에 도덕·윤리과에서 행복에 관한 윤리사상을 보다 심화하여 다룬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은 결국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며, 그것은 평생에 걸쳐해야 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내용을 담는 게 더 진실에 부합하고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조금 더 명확히 밝히면, ‘자아정체성의 확립과 실현’이 행복보다는 그나마 합당한 설명이지 않을까 싶다.
행복이 여러 기준과 정의로 해석된다는 점을 가르치는 게 핵심이라 하더라도, 일단 행복을 당연한 삶의 목적으로 꼭 정해놓을 필요가 있을까?
한 발자국 더 들어가 생각해 보면, 행복이 목적이라고 굳게 믿고 자신에게 행복을 주는 것을 계속 찾지만 결국 행복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는 역설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려다가 오히려 불행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아정체성이라는 말이 너무 어려워서 행복이라는 표현으로 치환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화와 청소년기의 의의(자아정체성의 탐색기)는 중학교 사회과에서 명확히 한 단원을 차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중학교의 교과 내용이 고등학교의 교과 내용보다 더 심화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물론 오늘날의 교육은 학생들에게 단순히 어떤 지식을 주입하기보다, 어떤 개념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넓고 깊게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행복을 삶의 목적이라고 왜 학생들에게 주입을 하느냐’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통합사회 교과는 원칙적으로 지식 그 자체의 습득보다는 여러 가지 학습 방식을 통해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하는 것을 권장하며, 우리 학생들은 충분한 이성과 판단력을 지니고 있을 것으로 본다.
다만 우리나라는 국가 수준 교육과정을 운용하고 있고, 이는 기본적으로는 국가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교육 내용의 틀을 교사와 학생들에게 제시하는 것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교육과정에서 인성과 가치에 관한 내용은 곧 국가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것이다.
현대 국가는 시민들이 개성과 독립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스스로 삶을 정의하고 설계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특히 장래에 시민이자 주권자가 될 학생들에게 어떤 내용을 가르칠 것인지를 제시함에 있어서는 보다 신중하고 자제해야 한다.
다음에 통합사회 교육과정을 개정할 때는 좀 더 학생들이 입체적이고 진솔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설계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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