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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일상

르라보상탈33에 대한 추억

by @블로그 2023.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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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라보상탈(La robe sous le vent)은 프랑스의 패션 하우스인 루이 비통(Louis Vuitton)에서 출시한 향수 라인 중 하나이다. 2016년에 출시되었으며, 마스터 파퓸니스트인 자크 카베르(Jacques Cavallier Belletrud)가 조합한 향이며, 섬세하고 신선한 플로랄 향조를 가지고 있다. 릴리, 자스민, 머스크 등의 향료가 사용되었으며, 여성용 향수로 출시되었다.

지난 사랑은 새로운 사랑으로 잊히지 않는다. 지난 사랑은 새로운 사랑을 그림자처럼 줄곧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후자가 건네는 다정한 말들은 전자가 건넸던 다정한 말들과 공명한다. 다정한 말 앞에서 잠시 설렜다가, 이내 지난 사랑을 떠올리며 슬퍼하고 망설인다. 어느새 지난 사랑은 지금 사랑의 오래된 미래처럼, 운명처럼, 저만치 앞서서 돌아본다.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지만 눈시울은 젖어든다. 지금 사랑은 지난 사랑의 무게를 온전히 견뎌야만 한다.


A를 만날 때 그는 나에게 향수에 대해 알려줬다. 특히 유독 아끼던 향수가 르라보 상탈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나도 그 향기에 매혹되어 가끔씩 나를 만나러 올 때 상탈을 뿌려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그와 헤어지고 B를 만날 때, B는 나에게 좋아하는 향수를 물었고, A를 떠올리며 무심결에 상탈이라고 말했다. B는 나에게 상탈 100ml를 선물해 줬고, 이제는 내가 B를 만날 때 상탈을 뿌렸다. 그러나 3분의 1도 채 못 썼을 때 우리는 헤어졌다. 책상 한편에 놓여있는 상탈은 차마 쉬이 뿌리지 못해 결국 유통기한을 넘겨 향은 희미해졌다. C를 만나러 가는 길, 향수를 뿌리며 그 향기만큼 희미해진 B와 그 향기보다 더 희미해진 A를 떠올린다. 저 향수를 꾸역꾸역 다 비워낼 쯤이면,  A도, B도 그렇게 마음에서 사라져 버릴 수 있을까. 이제 누군가 좋아하는 향수를 물어보면, 상탈이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을까. 추억이 덧입혀진 향수의 향은 예전과 같을 수 있을까.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은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언젠가 올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까요. 다만, 내가 기다려야 할 장소만 알려주세요. 작은 부탁이 있다면, 당신과 닮은 곳으로 정해주세요. 당신 품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기분이 들 수 있게요. 당신이 잠시 자리를 비운 거라는 착각이 들 수 있게요. 그래도 가능한 한 빨리 와주세요.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으니까요. 당신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당신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드니까요. 그건 너무 슬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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