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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더카머 WUNDERKAMMER 윤경희

by @블로그 2022.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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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더카머> WUNDERKAMMER.
윤경희



저자는 ‘경이로운 방’이라는 뜻을 지닌 분더카머 WUNDERKAMMER, 즉 근대 초기 유럽의 지배층과 학자들이 자신의 저택에 온갖 진귀한 사물들을 수집 하여 진열했던 실내 공간에 대한 설명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우리들 각자의 머릿속 내밀한 분더카머로 시선을 돌려 빛바랜 이미지와 기억과 텍스트 들을 소환해낸다.

어린 시절 창밖으로 바라보던 풍경, 첫 소풍날의 보물찾기, 어머니의 뜨개질, 친척집을 순회하며 벌였던 벽장의 모험, 이름 없는 독일 빵집의 냄새, 검은 숲 슈바르츠발트의 어둠, 누군가의 비석 위에 놓인 돌, 해석 불가능한 꿈들, 라블레의 허풍, 발터 벤야민의 체스 두는 인형, 롤랑 바르트의 동어반복, 그리고 각종 그림과 음악, 선물로서의 시들.

현재의 욕망과 불안의 근원에 다가가려는 열망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솟아오르고 조형된다.
책을 읽다 보면 다른 색깔과 호흡을 가진 텍스트들이 어수선하게 혼종되어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차분한 목소리로 메타포에 관한 다소 진중한 설명을 들려주다가 어느덧 너무나도 내밀한 고백이 흘러나오고, 앞 이야기가 공들여 쌓아올린 것을 다음 이야기가 부인해버리기도 하며, 종결을 향해 가던 문장이 새로운 수수께끼를 덧입더니 방향을 바꾸어 질주한다.

끝없이 돌고 도는 언어의 운동. 나 자신의 탐험가처럼 기억과 사물과 텍스트 사이를 누비고, 시, 꿈, 돌, 숲, 빵의 길들을 통과하며 사유의 모험을 펼치는 분더카머라는 기계를 한 바퀴 돌려 첫번째 글을 다시 펼치면 원래의 텍스트가 조금 바뀌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흑과 백의 문자가 찡긋 웃음 짓는 것도. 그러나 그렇게 다시 짜여진 풍경 속에서 우리는 자신에 대해 무언가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독자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초대장이다. 
독자들은 이 초대장을 들고 누군가의 어지러운 방을 탐험하다가 문득, 스스로의 유년기를 향해 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내가 드문드문 떨어뜨려 놓은 빵 조각들을 따라서....

분더카머가 뮤지엄의 전신이라고 하는데 수집가의 이야기는 아니고 자신의 의식속에 수집되어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어 쓴 에세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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