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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유산 심윤경

by @블로그 2022.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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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유산>

심윤경

 


언커크가 '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UN Commission for the U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 UNCURK'의 약자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믿어지지 않도록 아름다운 유럽식 저택을 지은 이는 악명 높은 친일파 윤덕영이었고, 언커크로 불리기 이전의 원래 이름은 윤덕영의 아호를 따른 '벽수산장' 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벽수산장은 1966년 식목일에 불이 난 후 몇 년간 폐허로 방치되었다가 1973년 봄 완전히 철거되어 세상에서 사라졌다.
잊히고 사라지는 것이 우주의 순리라고 하지만 이 건물의 운명에는 어딘가 유난한 데가 있었다.
돈의문도 바미안 석불도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벽수산장처럼 기억조차 절멸에 이르지는 않았다.

벽수산장의 잊혀짐에는 금기나 처벌에 가까운 어떤 기운이 있었다.
만일 그 저택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우리 곁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 소설은 그 유별난 잊혀짐에 대해 저자가 팔 년간 궁리한 결과다.
그 팔 년의 시간 동안 우리나라는 많은 정치적 격변을 겪었고 한쪽의 목소리가 광장을 뒤덮으면 또다른 쪽의 목소리가 밀려왔다.

밀물과 썰물처럼 밀려오고 떠밀려가고 옥신각신하는 목소리들의 한가운데에서 세끼 밥을 먹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시위대에 끼었다 빠졌다 하면서 저자는 적을 보는 우리의 시선에 대해 생각이 이르게 되었다.



적은 언제나 뻔뻔하다.
잘못을 뉘우치는 법이 결코 없다.
소설의 주인공 친일파 윤덕영의 딸 윤원섭처럼 뻔뻔한 적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득을 취한 것으로도 모자라 커다란 명예마저 챙기려 한다.

이익과 명예 둘 중 하나는 놓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적의 행태는 필연적으로 우리에게 적의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적들은 마지막 시험과도 같이 유산을 남기고 떠난다.

적이 남긴 유산, 적산.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적과 함께 말살해야 할 폐해인가, 남기고 지켜야 할 공동의 자산인가.

저자는 해방 후 적산으로 분류되어 유엔에 불하되었다가 물질로도 정신으로도 박멸된 벽수산장의 예를 통해 적이 남긴 유산 앞에 선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고자 했다.


희대의 친일파가 남긴 대저택, 그것에 빌붙어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친일파의 막내딸, 한없이 뻔뻔한 적을 향한 미움과 부인할 수 없이 아름다운 저택 사이에 선 독립운동가의 아들 소시민 청년 해동의 고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 소설에는 친일파와 왕가, 국제기구와 대저택 같은 거창한 것들이 등장하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사람을 이리저리 떠밀어대는 이념의 밀물과 썰물 속에서 정직과 존엄을 지키려 애썼던 평범한 사람들이다.

저택의 존속과 소멸에 아무런 결정권을 가지지 못했던 해동이 애꿎게 그의 직장을 내놓은 것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역사의 제단에 목숨이나 밥벌이할 직장 같은 것들을 올렸는데, 그것은 실상 그들이 가진 전부였다.

노랫말처럼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역사에 파묻고 잊혀져간 수많은 그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우리 역사의 주인공들이며, 우리는 각자 그렇게 우주의 중심에 살고 있다.

 

심윤경은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소설가이다. 벽수산장은 순종의 처삼촌이 지은 궁전 같은 양옥이죠. 보존하여 친일파에  대한 교육을 해야할 필요가 있는 곳인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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