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와 드라마

영화 소울메이트 리뷰

by @블로그 2023. 4. 23.
반응형

#소울메이트 Soulmate

세상에는 다양한 관계들이 있다. 그리고 그 관계들에는 정형화된 이름들이 있다. 모녀관계, 형제관계, 친구관계, 연인관계 등등. 그런데 가끔은 기존의 이름만으로 그 관계를 온전히 다 담아내기에는 모자랄 때가 있다. 민용근 감독의 <소울메이트>에서 ‘미소(김다미)’와 ‘하은(전소니)’의 관계가 그렇다. 그들은 제주도의 초등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미소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서울로 떠나기 전까지, 그들은 둘도 없는 친구 사이로 항상 붙어 다니며 일상을 공유했다. 더 이상 예전처럼 함께 할 수 없을 때에도,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동경했다. 물론 아무런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로의 관계가 소원했을 때조차도 그들은 한시도 서로를 잊은 적이 없다.


사실, 미소와 하은의 평온한 관계가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한 건, ‘진우(변우석)’의 등장 때문이었다. 하은의 남자친구가 된 진우로 인해 미소와 하은 사이에는 ‘삼각관계’로 인한 오해가 점차 깊어진다. 정확히 말해, 남성과 결혼에서 평범한 가족을 꾸리려는 하은의 이성애규범적 욕망은 그들의 자유로운 관계를 위협한다. 이성애는 그들 관계를 시험에 들게 하는 역경에 불과하다. 남성은 그들을 관성적인 삶에 머물게 하는 장애물에 불과하다. 나아가 남성과의 사랑은 다른 여성의 유혹 앞에서 허물어지고, 돈 앞에서 힘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미소와 애인들의 관계를 통해 보여준다. 더 이상, 이성애적 사랑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그 외의 다른 모든 사랑의 형태보다 우위에 놓이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영화는 미소와 하은의 관계를 결코 상투적인 레즈비언 관계로 한정 짓지 않는다. 오랜 갈등 끝에, 하은은 미소의 엄마도, 미소의 애인들도 자기보다 더 미소를 사랑하지는 못했다고 울부짖으며 말한다. 사랑의 가치는 더 이상 사랑의 관습적 형태에 따라 판단되지 않는다. 관계의 규범적 명칭이 사랑의 깊이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성 정체성에 따른 연인관계, 그러니까 나와 섹스를 하는 관계가 우월한 사랑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레즈비언 관계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성 정체성에 갇힌 사랑을 거부한다. 더 이상 사랑은 이성애나 동성애와 같은 한낱 성 정체성에 구속될 수 없다. 사랑은 성애적 층위로부터 벗어난다. 따라서 미소와 하은이 서로를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그것은 동성애로 쉬이 수렴되지 않는다.

사랑은 서로를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서로의 꿈을 찾아주는 것이다. 미소가 서울로 떠난 후, 그들은 비록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화가의 꿈을 접고 교사라는 현실적인 직업에 안주한 하은에게 자유롭게 사는 미소는 자신의 꿈을 대신해서 실현시켜 주는 존재였다. 마침내 하은은 관성적이고 규범적인 혼인 관계에 안주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비로소 미소처럼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살기로 결심한다. 한편, 미소는 연상의 독신 여성들과 함께 동거를 하며 대안적인 가족 형태를 경험한다. 나아가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하은이 낳은 딸아이를 대신 키우며 싱글맘의 삶을 살기도 한다. 그녀의 삶은 남자 없이도 충만해 보인다. 그리고 하은이 떠난 후, 대신해서 그녀의 못다 한 꿈을 이뤄준다.

미소와 하은은 비록 서로의 육체를 탐하지 않아도, 남자를 사랑하듯 상대를 독점하려 하지 않아도, 언제나 함께 붙어있지 않았어도, 서로를 서로의 삶에 중심으로 두고 있다. 어쩌면, 그건 서로를 사랑한다는 표현만으로 부족할지 모른다. 한편으로 그들이 여자로서 남자를 그저 사랑했던 것이라면,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사랑 그 이상의 사랑으로, 혹은 사랑을 초과하는 어떤 감정으로 서로 견고하게 유대하고 있었다. 그들이 차곡차곡 쌓아온 사랑은 그 어떤 관계의 이름에 앞서서 존재한다. <소울메이트>는 그렇게 새로운 관계를 발명하고 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