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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를 꿈꾸며

[커피정보] 커피의 역사와 커피하우스의 변화

by @블로그 2021.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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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핑크바니입니다.
다양한 커피 정보와 카페 정보를 나누고자 합니다.
나만의 카페를 시작할 때 많은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커피의 역사와 커피하우스의 변화에 대해서 알아보려 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카페을 찾는 이유는 둘 중 하나라고 한다. 화장실을 찾거나, 와이파이를 이용하기 위해서거나. 오늘날 카페의 한 기능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농담 섞인 말이다. 커피의 역사에서 커피하우스는 꽤 오랫동안 사회활동과 의사소통의 중심지였으며, 사회의 근본을 흔드는 혁명의 근거지였다. 가벼운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이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에 고개를 푹숙이고 있는 요즘의 커피점 풍경에서는 이러한 지난날의 커피하우스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다.

 

미국 독립혁명의 시발점이 된 보스톤차 사건그린 드래곤 인 태번 앤드 커피하우스(Green Dragon Inn, Tavern and Coffeehouse)에서 모의되었고, 미국의 독립선언문이 최초로 일반 대중 앞에서 큰 소리로 낭독된 곳은 필라델피아의 상인들이 만든 머천트 커피하우스(Merchant Coffeehouse)가 이름을 바꾼 시티 태번(City Tavern)이었다.

시티 태번은 지금의 미합중국으로 발전한 대륙회의(Continental Congress)의 공동회의장이기도 하였다.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존 애덤스 같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지적인 대화와 마음을 터놓는 교류를 나눈다는 명목으로 드나든 커피하우스였다. 미국의 독립과 건국은 커피하우스에서 볶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초창기 미국의 커피하우스는 사람들의 의사소통과 토론과 공론이 모이는 장소였다.

 

커피의 역사와 커피하우스의 변화

처음 커피는 이슬람 수도승들이 졸지 않고 밤새 기도하기 위한 용도로 마셨으나 어느덧 슬금슬금 사람들의 일상 생활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커피가 보통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커피하우스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커피하우스가 생겨나자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 커피를 마시는 것은 물론이고 체스와 같은 게임을 즐기고 그날의 뉴스를 논하고 노래하고 춤추기도 했다. 처음에 커피하우스는 교양인의 학교라고 불려지기도 하였으나, 부적절한 오락과 난잡한 이성교제가 일어나는 말썽의 주범으로 낙인 찍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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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커피하우스는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고 행동하는 공동체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했다. 커피하우스가 공론의 장을 제공하자 자연스럽게 정치· 경제 문제에 대한 토론과 함께 통치자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커피의 역사와 커피하우스의 변화

1511년에 메카의 커피하우스는 통치자를 조롱하는 풍자시의 근원지라는 이유로 카이르 베그라라는 메카의 젊은 통치자에 의해 강제폐업 당했다. 그 후 1500년대가 흐르는 동안 반정부선동을 두려워한 콘스탄티노플(오늘의 이스탄불)의 수상에 의해서 폐업되기도 했다. 1675년 말, 영국의 찰스 2세는 영국의 커피하우스가 왕실 전복 음모를 꾸미는 곳이라는 이유로 커피하우스 금지 포고령을 내렸다가 1주일 만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처럼 초창기의 커피하우스는 오늘날과는 달리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 대화하고 즐기고 사업을 하는 장이자 불경한 사상을 고무시키는 장이기도 했다.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커피점은 1554년에 오스만 투르크가 지배하던 시절의 콘스탄티노플에서 처음으로 생겨났다. 물론 그 전에도 메카나 카이로 등 이슬람 지역 여기저기에 커피하우스는 많이 있었으나 일반인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커피하우스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게 되자 이스탄불의 커피점은 단골손님을 끌기 위해 커피 음료에 마약과 향료를 섞기도 했고 매춘도 서슴지 않았을 정도로 퇴폐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커피의 역사와 커피하우스의 변화

유럽에서의 커피하우스는 이와 달랐다. 커피하우스는 1650년대부터 1700년 사이에 유럽 여기저기에 생기기 시작했다. 유럽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1650년 영국에서 생겼는데 곧 커피하우스는 전염병처럼 나라 전역에 전파되어 없어서는 안될 만남의 장소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1700년에는 런던에만 2천개가 넘은 커피하우스가 영업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커피하우스가 남성 위주의 사교클럽으로 운영되면서 1674년에 커피하우스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커피가 남성들을 불임으로 만든다고 주장하며 커피를 반대하는 여성들의 탄원서(The Women’s Petition Against Coffee)를 발표하여 커피를 규탄했다. 그러자 곧바로 남성들은 커피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탄원에 대한 남성들의 반박문(The Men’s Answer To The Women’s Petition Against Coffee)을 발표하여 낯 뜨겁지만 해학적인 공방을 주고받기도 했다.

 

영국에 커피하우스가 처음 나타날 때는 고등교육을 받고 활발한 사회활동을 보이던 부르조아 집단이 새로운 사회의 주도계층으로 부상하던 때였다. 커피하우스는 주로 부르주아 상인과 지식인들이 서로 만나고 교류하는 장소가 되었고 곧바로 공개적인 토론으로 이어져 순식간에 각종 경제와 정치 문제로 확대되었다.

1페니만 내고 커피 한잔을 사서 하루 종일 커피하우스에 앉아 남들이 나누는 이와 같은 토론과 대화를 모두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1페니 대학교(One penny university)로 불리기도 했다. 커피하우스가 정치·경제 문제에 대한 불온한 토론이 일어나는 공론의 장이 되자 1675년 말 당시 국왕이던 찰스 2세는 커피하우스를 놀고먹으면서 정부에 불만을 품고 있는 자들의 놀이터라고 하면서 커피하우스 전면 폐쇄를 명령하기도 했다.

 

커피의 역사와 커피하우스의 변화

영국의 커피하우스들은 저마다 단골손님의 유형이 달랐다. 작가들이 즐겨찾는 커피하우스가 있었던 반면, 의사, 정치가, 상인, 변호사, 성직자, 무역업자, 뱃사람들이 즐겨찾는 커피하우스가 따로 있었다. 오늘날 세계 최대의 보험업자협회인 런던로이즈(Lloyd’s of London)는 주로 뱃사람과 무역상인들을 단골손님으로 하여 에드워드 로이드(Edward Lloyd)가 운영하던 커피하우스에 선박화물과 이들의 입출항 일정을 자세히 적은 목록을 만들어 걸었던 데에서 유래되었다. 오늘날에도 런던로이즈는 직원들을 웨이터라는 호칭으로 부르면서 커피하우스의 전통을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조나단 커피하우스(Jonathan Coffee House)는 현재의 런던증권거래소로 발전하였고, 오늘날 세계 화물 운송과 상선 거래의 허브인 발틱해운거래소는 1744년 문을 연 버지니아 앤드 발틱 커피하우스(Virginia and Baltic Coffee House) 를 그 모태로 하고 있다.

주간지 태틀러(The Tatler)스펙테이터(Spectator) 같은 언론지도 모두 커피하우스에서 탄생했다. 당시 태틀러의 편집자였던 리차드 스틸은 태틀러의 주소를 주로 과학자들의 정보교환의 장소였던 그레시안 커피하우스 (Grecian Coffee House)로 기재하고 그 곳에서 기사를 쓰고 편집했다고 한다.

 

커피의 역사와 커피하우스의 변화

특정 고객층이 단골 커피하우스에 모여 자유롭게 의견과 정보를 교환하게 되자 곧 커피하우스는 우체국 역할도 하게 되었다. 즉 특정 고객들이 출입하는 커피하우스를 기반으로 편지나 신문의 발송과 배달을 조직화한 것이다.

커피하우스에 자루를 걸어놓으면 편지를 보내고 싶은 사람은 그 자루에 편지를 넣고, 어느 정도 편지가 모이면 배달하는 시스템이었다. 국가에서도 1683년에 이러한 방식의 우편제도를 도입하였는데 당시 우체국뿐 아니라 커피하우스도 편지를 모으는 장소로 지정했다. 해외우편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근대적인 우편제도가 출현하여 나라에서 우편업무를 취급하는 커피하우스를 폐지하고자 했지만 커피하우스의 반대로 오랫동안 고생을 하다가 1799년에야 해외우편 취급소에서 커피하우스를 뺐고 국내우편은 1840년이 되어서야 배제할 수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영국보다 약 20년 정도 늦게 커피하우스가 등장했다. 프랑스에 커피가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영국과는 달리 커피하우스의 인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의 국제정치 탓이었다.

17세기에 동지중해와 아프리카의 북단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던 오스만투르크는 신성로마제국의 빈(Wien)을 차지하여 유럽의 한복판에 이슬람 요새를 완성하려고 했다. 오스만투르크는 이미 1620년대에 한 차례 빈을 침공했으나 실패한 적이 있었다. 또다시 빈을 침공하기에 앞서 1669년 슐리이만 아가(Soliman Aga)라는 특사를 프랑스에 파견하여 루이 14세에게 중립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했다.

 

커피의 역사와 커피하우스의 변화

비록 루이 14세와의 협상은 결렬되었으나 아가는 바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1년 동안 파리에 머물면서 계속 프랑스의 동정을 살폈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아가는 파리의 귀족들을 터키식으로 꾸민 저택에 초청하여 터키식으로 커피를 끓여 대접했다. 곧 파리의 상류사회는 터키 양탄자 바닥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것에 열광하였고, 터키 열풍을 일으켰다.

아가가 파리 사람들에게 커피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떠난 후 1672년 파리에 프랑스 최초의 카페가 문을 열었으나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프랑스의 카페는 1689년에 이탈리아 출신 프로코피오 쿠텔리(Procopio Cutelli)가 프랑스의 국립극장 건너편에 르 프로코프(le Procope)라는 카페를 열면서 비로소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전성기에는 볼테르, 루소, 디드로 등 대표적인 문인들이 단골로 드나들었고 약 100년 후에는 미국의 벤자민 플랭클린도 다녀갈 정도로 프로코프는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커피의 역사와 커피하우스의 변화

1710년대 파리에는 300여 곳이 넘는 카페에서 사람들이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고 보르도, 낭트, 리옹 마르세유 등 프랑스의 다른 대도시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789년 당시만 해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문맹이어서 사람들은 뉴스를 입소문으로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파리의 카페에서는 마치 영국의 1페니 대학교처럼 글을 읽지 못하였더라도 신문지면을 가득 채운 뉴스를 들을 수 있었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도 말할 수 있었다.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마침내 1789년 7월 14일 파리의 카페 드 포아(de Foy)에서 가자 바스티유라는 외침과 함께 프랑스혁명의 대서막이 오르게 되었고, 커피하우스는 사회의 대변혁을 이끄는 혁명의 근거지가 되었다.

빈에 커피가 처음으로 도입된 것은 1660년이었지만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1686년에 열렸다고 한다. 빈의 커피하우스는 파리에 터키 열풍을 몰고 온 슐리이만 아가의 뒷이야기와 겹친다. 오스만투르크는 프랑스의 중립약속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결국 1683년에 대대적인 빈 침공에 나섰다가 처참하게 실패하고 만다.

 

커피의 역사와 커피하우스의 변화

그 때 오스만투르크군이 퇴각하면서 버리고 떠난 수백 자루의 커피를 전리품으로 챙긴 오스트리아의 국왕은 전쟁 때 큰 공을 세운 콜시츠키라는 폴란드인에게 커피자루 전부를 하사하였고, 콜시츠키는 1686년에 블루보틀(Blue Bottle)이라는 빈 최초의 커피하우스를 열었다. 지금 미국에서 스페셜티 커피를 고집하는 유명한 커피 전문점과 이름과 같다는 것이 이채롭다.

 

콜시츠키의 커피하우스는 처음에 인기를 끌지 못하였다고 한다. 콜시츠키는 처음에 이슬람의 관례에 따라 커피를 끓여 가루째 제공하였는데 이 음료에 섞여 있는 커피 가루가 빈 사람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콜시츠키는 이슬람의 관례를 무시하고 끓인 후 가루는 걸러서 버리고, 커피 위에 설탕을 듬뿍 넣거나 달콤함 크림을 올려 함께 내놓기 시작하였다. 오늘날의 비엔나 커피의 효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곧 빈 사람들은 이슬람의 침공을 막아냈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슬람의 상징인 초생달 모양의 크루와상과 함께 비엔나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커피의 역사와 커피하우스의 변화

사람들은 커피를 마실 때 맥주나 물처럼 후루룩 마시지 않는다.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면서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커피하우스의 역할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해왔다. 오늘날의 커피점은 과거의 커피하우스와는 달리 더 이상 사회와 정치활동의 중심이 아니다. 어떤 철학자는 오늘날의 커피점이 상호작용의 장소라기 보다는 공동 고립의 장소로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의 커피점은 단순히 커피라는 상품을 파는 카페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안타까워 하기도 한다.

 

커피의 역사와 커피하우스의 변화

비록 오늘날 카페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기 위하여 방문하는 곳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홀로 있지 않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을 위한 공간을 제공한다면 그 자체로서도 충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요즘 커피점에는 자신만의 세계에 누가 침입하는 것을 막으려는 듯 이어폰을 귀에 꽃은 채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응시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이런 현실에서 카페가 과거의 커피하우스와 같은 공론장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에게 문이 열려 있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 모든 사람이 똑같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중립적이고 매력적인 공간, 여러 사람과 함께 있지만 혼자인 공간이 있다면 그 곳이 커피하우스카페이든 커피를 음미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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