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벗어나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거닐고 싶은 창덕궁과 창경궁.
잠깐의 휴식!
창덕궁은 자신을 숨기기를 원했던 조선 왕들의 마음이 보이고, 창경궁은 아들과 손자로부터 보살핌을 받았던 대비들의 넉넉한 노후가 느껴지고...
창경궁이 주는 편안함이 법궁인 창덕궁이나 경복궁보다 더 친근하게 다가옴은 나 또한 늙어간다는 의미인가??
<잠깐의 지식>
1. 창덕궁
창덕궁은 1405년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은 궁궐이다.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이웃한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이라 불렀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불에 타자 광해군 때에 다시 짓고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정궁 역할을 하였다.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랫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이다.
경복궁의 주요 건물이 좌우대칭의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면 창덕궁은 산자락을 따라 건물들을 골짜기에 안기도록 배치하여 한국 궁궐 건축의 비정형적 조형미를 대표하고 있다. 또한, 비원으로 잘 알려진 창덕궁 후원은 다양한 정자, 연못, 수목, 괴석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가 탁월한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2. 창경궁
1963년 1월 18일 사적 제123호로 지정되었다. 1484년(성종 15) 당시 생존하였던 세 왕후(세조·덕종·예종)의 거처를 위해 옛 수강궁 터에 지은 것이다. 이때 지은 집이 명정전·문정전·수녕전·환경전·경춘전·인양전·통명전과 양화당·여휘당 및 사성각 등이다. 전각의 이름은 서거정(徐居正)이, 정전(正殿)인 명정전의 상량문은 김종직(金宗直)이 지었다.
그러나 창건 당시의 전각은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고, 1616년(광해군 8)에 재건된 뒤에도 몇 차례의 화재가 있어, 그때마다 내전이 불탔기 때문에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대체로 임진왜란 후에 재건한 명정전을 비롯한 그 회랑과 그 앞문인 명정문,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 등 외전과, 1834년(순조 34) 다시 지은 숭문당·함인전·환경전·경춘전·통명전·양화당·집복헌·영춘헌 등의 내전으로 나눌 수 있다.
궁의 배치를 보면, 동쪽 한가운데에 ‘凸’자 모양으로 불룩하게 나온 중심부분에 있는 중층삼간누문(重層三間樓門)인 홍화문을 들어서면,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금천(禁川) 위에 놓인 옥천교가 있고, 이를 건너면 명정문과 좌우 행랑채가 있다. 이 문을 지나면 널찍한 뜰이 나오고, 그 일직선상의 중층으로 된 기단 위에 명정전이 있다. 홍화문 좌우의 행랑이 이 명정전까지 계속되면서 울타리를 이루어, 창경궁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명정문은 홍화문보다 높은 지대에 있고, 명정전은 명정문보다 한층 더 높은 곳에 있는데, 이러한 예는 창덕궁과 개성(開城)의 만월대에서 볼 수 있다.
그후 1907년 순종이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기자 이 곳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꾸며 오락장으로 삼았는데, 1910년(융희 4) 이름을 창경원(昌慶苑)으로 고치고, 벚꽃나무를 잔뜩 옮겨 심어 일반에게 휴식처로 공개하여 오다가 1983년 12월 30일 창경궁으로 복귀하였다.
#일상 #일상블로그 #일상이야기 #끄적끄적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강원도 철원 고석정 꽃길 feat. 가우라꽃, 핑크뮬리
고혈압약, 당뇨약 복용해도 코로나19 백신 맞아도 될까?
내 성격과 어울리는 한복 스타일은? (걸글로브 한복MBTI)
고혈압약, 당뇨약 복용해도 코로나19 백신 맞아도 될까?
'흘러가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상] 내가 누군지 알어? (0) | 2021.11.17 |
---|---|
[일상] 이대로 살아간다는 것 (0) | 2021.11.16 |
[서초동] 피제리아 호키포키 미국식 피자 맛집 (0) | 2021.11.09 |
[문래동] 문래그집 미나리 삼겹살과 와인콜키지 무료 (0) | 2021.11.08 |
[연남동] 카페잼잼 바질파스타 추천 (4) | 2021.11.07 |
댓글